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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ravel in Korea

구불구불… 덜컹덜컹… 끊길듯 이어지는 비포장도로에서… 가을을 낚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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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불구불… 덜컹덜컹… 끊길듯 이어지는 비포장도로에서… 가을을 낚다

문화일보 | 기사입력 2007-10-24 14:32 | 최종수정 2007-10-24 15:32  





5만분의 1 축적의 지도를 샅샅이 짚어보다가, 그 길을 찾아냈습니다. 충주호를 바짝 끼고 돌아가는 비포장도로. 가늘게 끊길듯 이어진 길을 연필로 이어가면서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. 7년 만에 최고 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충주호. 그 호수에 이제 막 당도한 가을을 만나러 가는 길.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은 그 흙길을 물길을 따라 천천히, 아주 천천히 달렸습니다.


충주호에서 익히 알려진 36번 국도를 따라가는 드라이브 코스를 버려두고 굳이 비포장도로를 택한 것은, 그 길에서 가을을 훨씬 가깝게 만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. 가드레일로 막힌 거대한 호수 풍경이 아니라, 실핏줄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. 그 길에서는 가을의 다양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.


비포장도로의 미덕은 아마도 ‘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것’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. 매끈하게 놓여진 포장도로에서는 휙휙 풍경을 지나치며 달려가거나,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를 번갈아 보면서 차 한대 세울 곳을 찾아 위험한 곡예를 해야 합니다. 쌍라이트를 번쩍이며 따라오는 관광버스까지 신경 써가며 운전대를 잡는 게, 도회지에서의 운전과 무어 그리 다를 게 있겠습니까.


그러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맛은 다릅니다. 우선 길에 다니는 차들이 거의 없습니다. 느린 속도로 달려도, 길 복판에 차를 떡하니 세워도 누구 하나 뭐랄 사람이 없습니다. 이렇게 느리게 달리면 봐야 할 것들을 차분하게 볼 수 있습니다.


길가에는 개미취며 구절초, 흰 솜털이 피어난 억새까지 가을꽃이 가득합니다. 물가에는 미루나무며 소나무들이 허리까지 물에 잠겨 있습니다. 샛길을 따라 언제든 물가로 내려설 수 있고, 무엇보다 눈돌리는 곳마다 호젓합니다. 이쪽 길에는 번잡스러운 향락시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서 좋습니다.


비스듬히 드는 햇살에 붉고 노랗게 든 단풍이 거울처럼 물에 반영됩니다. 숲과 물이 어우러지는 곳에서는 석양을 마주보고 낚시꾼들이 세월을 낚고 있습니다. 이런 풍경은 비포장길이 아니고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. 충주호의 절경을 돈다는 유람선도 이쪽으로 돌아들지 않고, 포장도로 역시 멀리 물 건너편 쪽으로만 휙휙 내달리니 말입니다.


비포장길이라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. 포장만 안 해놓았다 뿐이지, 잘 다져진 길은 포장도로 못지않습니다. 그리고 마을을 지나는 구간은 정갈하게 아스팔트로 포장이 돼 있기도 합니다.



충북 제천시 청풍면 오산리에서 만난 충주호 풍경. 산아래 물가 쪽부터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거울 같은 호수에 반영돼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내고 있다. 충주호 북서쪽으로 나 있는 인적 드문 비포장길을 천천히 달리다 보면 이런 그림 같은 풍경을 수없이 만난다. 

흙길에서 먼지가 풀풀 나는 게 좀 신경 쓰이긴 하지만, 이런 불편쯤은 감수하고도 남습니다. 황홀한 가을 풍경을 만나는 대가치고는, 이런 정도의 불편은 헐한 까닭입니다.


비포장도로를 따라가는 가을 충주호의 드라이브는 어쩌면 이번 가을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. 몇몇 구간에서는 포클레인들이 굉음을 내며 포장공사를 벌이고 있습니다. 앞으로 구불구불한 길이 직선으로 뚫리고, 좁은 길은 넓혀지겠지요. 딱 그때까지만 허락된 길입니다.


이번 주말 무렵이면 충주호는 가을로 가득찰 것입니다. 가을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풍경을 만나는 길. 그 길을 되도록 천천히 달려 보시지요. 길이 곧 목적지가 되는 드라이브 여행에서 덜컹거리면서 ‘느리게 간다’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것인지 알게 될 겁니다.


제천·충주·단양 = 글·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@munhwa.co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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